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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항 - 김선우

2002.07.22 11:59

윤성택 조회 수:1222 추천:209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김선우 / 창작과비평사



             목포항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 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 속의 상처 덧날 때가 있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팍에 수십 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 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기를

        떠나간 막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감상]
배를 탈 때 항상 뒤쪽에서 멀어져 가는 것들을 봅니다. 포말을 일으키며 잔잔한 수평선을 덮고 또 덮는 그 물살들. 왜 내 상념은 과거에게로만 열려 있는지, 이 시는 그 속내를 알려주는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을 돌이켜보건데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상처야말로 뒷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당신이 보냈던 막배는 어느 시간에 정박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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