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온 아이/ 박해람/ 현대시 2월호
잘못 온 아이
아이들이 태어난다
태어난 뒤에 비로소 번호표를 받아드는 아이들
이곳으로 오기 전의 다른 세상의 언어로 울어댄다
말이 통하지 않자 더욱, 크게 울어댄다
문득 계획됐던 곳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치기를 했을까
어쩌면 먼 고대로부터 걸어왔을 아이는
어느 부족에도 추방되어진 병정(兵正)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몽골의 어느 사내와도 닮은 것 같다
무덤 같은 둥근 배에서 아이들이 꺼내어진다
멀고 먼 대를 오는 동안 어느 대에서는 팔을, 또 머리카락을, 두 발을,
그리고 아주 인심 나쁜 세상에서 마음을 얻었을지도 몰라
슬롯머신의 숫자처럼
사주와 기후가 맞아서 이곳에 멈춘지도 몰라
분만실 앞에서 환호하는 이들을 보면 그래
그러나 잘못 온 아이는 또 어느 시대로 돌아가야 하는지
병원 한 구석에서
여러 세상에다 주파수를 맞추려 애를 쓰는 아이
돌아가는 길을 몰라 헤매는 저 아이
너는 잘못 온 아이야, 주변에서 늘 귓속에다 속삭이는 이곳은
너무 길을 잃기 쉬운 곳
길을 잃고 우는 아이와
잠시 머무는 유곽의 주인 같은 어미들
아이들은 너무 길을 잃기 쉬운 세상의.
[감상]
가끔씩 시는 체험에서 영감이 이뤄집니다. 이 시인은 올 초에 득녀를 했다는군요. 시인은 분만실에서 초조히 기다리면서, 신생아실을 기웃거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태아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이는 아내의 뱃속에서 강장류에서 양서류에서 포유류로, 수 만년 이뤄온 진화를 단 열 달만에 완성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시는 다리에 다는 이름표가 없다면 한 운명이 뒤바뀔지도 모르는 한 아이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윤회의 개념을 슬며시 들여다봅니다. 라마크리슈나가 운명하기 전 그랬다지요, 나는 단지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갔을 뿐이노라. 그리하여 이렇게 방을 옮겨 다시 당신을 만났으니 얼마나 소중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