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속의 길/ 김혜수 / 『시현실』 봄호
길 속의 길
누군가 길 위에
낙관을 찍어 놓았어
납작 들러붙어
길바닥 속으로 스며든 저것은
들고양이가 아니야
문장에 찍힌 쉼표 같기도 하고
초경자국 같기도 한
붉은 낙관이 찍힌 이승을
한 발짝 물러서 감상하면
어둠 속에서도 삶은 저렇듯 명징하고 환해
주검은 다만 길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네
그곳으로 별들이 다녀가고
기척도 없이 하늘이 다녀가고
한밤에
이슬을 털며 당신이 다녀갔네
가볍게 허물을 벗어놓고
지구의 허벅지 가장 민감한 곳에
꾹 -
붉은 방점을 찍어놓고
[감상]
가끔씩 보게되는 풍경입니다. 어쩌자고 길을 건너려 했던 것일까. 고양이의 주검은 바퀴가 지나칠 때마다 인주처럼 꾹 눌려 무언가 확인 받으려는 것만 같습니다. "주검은 다만 길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표현이 놀랍네요. 잠시 왔다가는 길. 제몸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떠난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