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 / 창비시선
이 복도에서는
종합병원 복도를 오래 서성거리다 보면
누구나 울음의 감별사가 된다
울음마다에는 병아리 깃털 같은 결이 있어서
들썩이는 어깨를 짚어보지 않아도
그것이 병을 마악 알았을 때의 울음인지
죽음을 얼마 앞둔 울음인지
싸늘한 죽음 앞에서의 울음인지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복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울음소리가 들려도 뒤돌아보지 말 것,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 것처럼 앞으로 걸어갈 것
마른 시냇물처럼 오래 흘러온
이 울음의 야적장에서는 누구도 그 무게를 달지 않는다
[감상]
참, 시인의 눈을 새삼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종합병원에서 오래 앉아 있어본 경험을 이렇게 “울음”에 대한 감별로 시작하다니요. 그리고 또한 이런 깨달음을 “누구나”에게로 확대시킴으로서 공감의 울타리를 열어 놓았습니다. 아프지 말아야지요. 포르말린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병원에서 오래 기다리지 말아야지요. 다들 그런 “감별사”가 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