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김점용 / 문학과지성사
내 안의 붉은 암실 ―꿈 33
여자와 내가 암실에 있다 커튼을 치고 실내등을 끄자 밖에선 휙, 별똥별이 진다 붉
은 조명등이 비추는 인화지 위로 희미한 윤곽이 떠오른다 추억이야, 여자가 말한다
물에 담긴 인화지엔 벌거벗은 내가 보인다 내 거기가 퉁퉁 불었다 여자가 만지려고
하자 약품이 독해, 내가 말린다 여자가 핀셋을 든 채 소곤거린다 장갑을 껴서 괜찮
아
오랜만에 받은 그녀의 전화
나 결혼해
그래, 축하해
담담하게 주고받았지만
어둠 복판에서 더 선명했구나
한순간 빛을 가둔 우리 마음의 떨림들
다시는 불 켜지 못할
내 안의 붉은 암실
[감상]
이 시인은 특이하게도 꿈과 현실을 오가는 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암시하는 것을 다시 내 꿈에게 물어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암실 다들 있겠거니 하면서 말입니다. 잘 살고 있지? 한때 빛이었던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