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의 아침/ 박진성/ 『현대시』2002년 6월호
카니발의 아침
새벽에 나는 깨어서 낡은 기타를 어루만지고 있다
술 한잔 기타 한 대로 햇빛을 만들고 있다 당신이
브라질의 어디, 상 파울로나 리오 데 자네이루
지도 속 지명을 예쁘게 발음 할 때 나는
나의 사랑이 끝인 줄 알았다 햇살이
와인처럼 출렁이던 동물원에서 당신은 웃고 있었다
안데스 산맥에서 잡혀온 라마 한 마리 눈동자 속
빙그르르 돌아 나오던 당신…
터지는 웃음으로 나를 팜파스의 평원으로 밀어낼 때도
나는 술잔 속에 있었다 충혈된 눈 속 이글거리던
봄날의 나무는 아무데서나 꽃망울 터뜨리고
프레보, 삼바, 마라까뚜, 아포셰, 라틴의 음악 속에서는
나무들도 춤을 췄다
새벽에 나는 깨어서 낡은 기타를 어루만지고 있다
나의 대척점(對蹠點)에서 저녁을 맞고 있는 당신은
이제 노래 부를 것이다
방바닥으로 햇살이 튀어 오를 때
동 터 오는 새벽 하늘로 나의 심장이
빨려 들어갈 것이다 폐허 속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음악 몇 줄기,
피곤한 기타줄을 나는 튕기고 있다
[감상]
"발음"이라는 말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기타도 어쩌면 줄을 퉁겨 소리를 발음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그런 "발음"에 대해서 새로운 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이곳저곳 지명을 발음하는 그녀. 어쩌면 그 생소한 발음에서 화자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한 관능을 자극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리오 데 자네이루"를 발음할 때의 변화되는 입술의 모양과 막연하게 떠오르는 뜨거운 백사장과 작열하는 태양. 하여 음악이란 추억을 화음화 시키는, 아니 화음들을 추억에 덧씌우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동 터 오는 새벽까지 낡은 기타를 퉁기며 그녀의 발음들을 되돌아보는 쓸쓸한 정경이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