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들은 울지 않는다, 웃는다/ 최금진 / 『현대문학』 6월호(2002)
소들은 울지 않는다, 웃는다
철창을 치며 내리는 빗속에 둥근 눈알들 떠다닌다
껌벅껌벅 겁먹은 불빛들 고삐 주변에 고인다
주위를 둘러보다 서로를 알아보고는 말이 없어진다
일생의 방향키가 되어준 코뚜레 좌우로 흔들리고
목 뒤에서 웃음을 거래하는 손들을 따라
또 어디로 난파선처럼 흘러갈 것인가
눅눅한 볏짚과 그 위에 웅크리고 누웠던 밤들이
빗물에 엉겨 흐르고, 되새김하기도 전에
번갯불이 채찍을 들어 갈긴다
눈꺼풀 속으로 파장하는 저녁
목에 걸린 종소리는 상여처럼 길을 앞서고
검은 외투의 빗소리들은 끝없이 뒤를 따르는데
아직도 팔려가는 꿈을 다 못 꾼 것일까
꼬리로 제 운명의 펑퍼짐한 엉덩짝을 치면서
허연 김이 오르는 몸을 부르르 치욕처럼 떨면서
딸랑딸랑 어둠 속을 제 몸으로 밝히며 가는
탄탄한 등짝의 노예 한 마리
새 주인은
조용한 사람, 옷깃에 얼굴을 묻고
빗속에 혼자 걸어가고 있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다
[감상]
관찰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이 시는 우시장에서 거래되는 소들의 일상을 꼼꼼한 시선으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이 시인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남다른 이미지에 대한 주물(鑄物) 능력에 있습니다. 마지막 "새 주인은/ 조용한 사람, 옷깃에 얼굴을 묻고" 부분은 참 탁월한 표현입니다. 소를 몰고 가는 이가 있는 동양화 한 폭을 활자로 필사해놓은 듯한 인상입니다. 모쪼록 골방에 앉아서 골몰하는 것보다, 현실에 밀착된 시가 끌리는 이유를 이 시는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