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 신용목 /『작가세계』 2000년 가을호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
잉어의 등뼈처럼 휘어진
골목에선 햇살도 휜다 세월도 곱추가 되어
멀리 가기 어려웠기에
함석 담장 사이 낮은 유리
문을 단 바느질집이 앉아 있다
지구의 기울기가 햇살을 감고 떨어지는 저녁
간혹 아가씨들이 먼발치로
바라볼 때도 있었으나
유리 뒤의 어둠에 비춰 하얀
얼굴을 인화했을 뿐 모두가
종잇장이 되어 오르는 골목에서는
누구도 유리문 안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쩌다 새로 산 바짓단에
다리를 세우기 위해 오래된
동화책 표지 같은 문고리를 당기면
늙은 아내는 없고
실밥을 뱉어내는 사내가 양서류의 눈으로
잠시 마중할 뿐 엄지와 검지로
길이를 말하면 못 들은 척
아가미를 벌렁거릴 뿐 이내
사람의 바늘코에 입질을 단련시키기 위해
드르르르 말줄임표 같은 박음질을 한다
재봉틀 위에 놓은 두 개의 지느러미에서
꼿꼿하게 가늘어진 바늘
갈퀴를 확인하며
나오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유리문 안엔 물결이 있다
부력을 가진 실밥이 떠다니고
실밥을 먹고 사는 잉어가 숨어 있다
누구든 그 안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삶의 각질을 벗어들고
물고기처럼 휘어져야 한다 때로 바람에
신문지가 날아와 두드린다
해도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자주 세월을 들이면
잉어의 비늘이 마를 것이므로
틀니를 꽉 다물고 버티는 유리가 있다
젖은 바지를 찾아오는 날에는
부레에 잠겨 있던 강물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추억을 건조시키지 않으려는 듯
헐은 날개를 기워주는
휘어진 골목 옆에는 바느질집이 있다
성내동 사람들은 모두
종이처럼 얇아져 있었으므로
아무도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어항 속에 형광등이 휘어지듯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휘어지는 걸음을 어쩌지 못한다
[감상]
이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치열함이 느껴집니다. 동네 골목 어귀 어디든 있음직한 수선집을 어항으로 비유하는 것에서부터 예사롭지 않는 힘이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좋은 시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시의 경우는 틀 자체부터가 새로우므로 그 참신함에 이끌려 끝까지 읽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들은 생명력도 질겨 어둠에 접혀진 서가 어디에서라도 제 힘으로 갈피를 벌려 빛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페이지를 접어 표시하게 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