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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저녁에는 나도 함석지붕처럼 흐르고 싶다/ 신지혜 /『현대시학』 신인공모당선작
                                  
  



     바람부는 저녁에는 나도 함석지붕처럼 흐르고 싶다
    
   
     무늬진,
     저녁 뼈마디에 내 이름을 꽂는다. 무슨 무인도 깃발같은 붉은 창문을
   달고 지나가는 바람을 간절히 부른다. 늦은 구름이 태연히 지나간다. 목
   울음 삼키는 먼 산등성이  툭, 붉어져 나온  심장에도 투명한 유리창이
   달려 있을까. 셀로판지 같은 허공에 뺨을 부비는 함석 지붕들이 흐르고
   싶어 안달이었다. 길가, 거꾸로 선  나무들이 맨 뿌리로 서로를  더듬는
   저녁, 이따금씩 빈 인스턴트 캔들이 골목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자꾸
   만 눕혀도 다시 일어선 길들이 녹슨  철문의 문고리를 잡아 흔든다. 깜
   깜한 어둠이 공중에 낳은 새알 하나가 허공을 더 높이 밀어  올리고 있
   었다. 주름진 어둠의 표피 속에서 수련처럼  천 년을 훌훌 벗어버린 채
   푸른 붓꽃이 다투며 피고 있었다. 잘  망치질 된 함석지붕처럼 나도 흐
   르고 싶었다. 바스락, 귀를 달싹거리며 무엇인가, 두터운 어둠의 표피를
   파열시키며 수수 꽃다리 같은 꽃불을  밀어올렸다. 가느다란 소리의 실
   핏줄이 죽죽 어둠에 칼금 그었다. 그러자 검붉은 소리알들이 저 공중에
   솟아올라 물총새처럼 오래도록 떠 있었다.
    

[감상]
이 신인의 수사를 눈여겨봅니다. 시에 있어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사유는 가장 큰 비중이지만,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섬세하고 날카로운 눈의 관찰에 의한 묘사는 시의 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유에 의한 표현들이 참 인상적입니다. 우리에게 좀더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시입니다. 이 시처럼 오늘은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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