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도둑』/ 유춘희/ 들녁
분리수거
1회용 컵라면 용기 깨진 도자기 등의
일반 쓰레기는 규격 봉투에
신문지 우유팩 유리병 플라스틱류는
재활용 박스에
음식물 쓰레기는 물기를 빼고
색이 다른 규격 봉투에
삐걱이는 의자와
저 혼자 웅웅 소리를 내며
우두커니 적막을 지키던 냉장고와
여닫기를 멈춘 장롱과 화장대는
품목별 스티커를 붙여 거리에
가슴에서 와글거리던 꿈과
와글대다 깨지고
물기 다 빠져 내 안에
켜켜이 눌러진 절망들은,
자주 삐걱이던 기다림과
우두커니 남은 슬픔들과 이제는
귀가 맞지 않아
열리지 않는 시간들은 어떻게?
그대여!
사랑하면서 우리가 소비한
이 그리움 나부랭이들은 어떻게
[감상]
버려질 것들의 자리. 종량제 봉투에 넣어지는 것들에서 "사랑하면서 우리가 소비한 이 그리움 나부랭이들"로 이어지는 잔잔한 흐름이 좋습니다. 세상은 이렇듯 나를 드러내기 위해 엔트로피의 증가시키며 점점 무질서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소비한 것들이, 나의 질서를 위해 무질서로 내버려지는 이유. 무엇일까 이 그리움 나부랭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