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한 주머니』/ 유안진/ 창작과비평사
봄비 한 주머니
320밀리리터짜리
피 한 봉다리 뽑아 줬다
모르는 누구한테 봄비가 되고 싶어서
그의 몸 구석구석 속속들이 헤돌아서
마른 데를 적시어 새살 돋기 바라면서
아냐 아냐
불현듯 생피 쏟고 싶은 자해충동 내 파괴본능 탓에
멀쩡한 누군가가 오염될라
겁내면서 노리면서 몰라 모르면서
살고 싶어 눈물나는 오라 해도 4월
내가 할 수 있는 짓거리는 이 짓거리뿐이라서―.
[감상]
물론 1연의 깊이 때문입니다. "누구한테 봄비가 되고 싶어서"라고 헌혈을 그렇게 비유해내다니. 참 사람은 묘합니다. 저는 소주나 퍼 질러먹은 다음날, "누구에게 얼큰한 콩나물국이 될 순 없을까" 했더랬는데. 모쪼록 생각해볼 일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누구인지, 당신은 내게 누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