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강의 별밤, 테오에게 / 박진성 / 『시와사람』 2002년 봄호
론강의 별밤, 테오에게
테오, 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 있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
강물 소리가 들리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
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두 男女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네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
다네>* 타라스콩,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별은 빛나고 있었다네 흔들리
듯 가라앉듯 자꾸만 강물 쪽으로 무언가 빨려 들어가고 있네 강변의
가로등,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다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을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네 나는 노란색의
집으로 가서 숨죽여야 할 테지만 별빛은 계속 빛날 테지만. 캔버스에
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리네 테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
져갈 수 있을까 트왈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네
* 1888년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인용
[감상]
100년이 넘은 과거의 편지에서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네"라고 죽음을 "문"으로 비유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그리고 그 시대로 다시 되돌아가 편지를 완성하는 시인의 의지도 좋습니다. 지금 밤하늘 어딘가에 고흐의 별자리가 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