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가게 앞의 개들/ 최금진/ 2001년 <창비>신인상 당선작
과일가게 앞의 개들
생선의 해진 살점처럼 구름이 떠다니는 거리는 비릿하다
러닝셔츠만 걸치고 여름을 나던 시절이 사내를 거쳐 지나와
다시 과일가게 앞에서 모기향을 피우고 있다
지워지지 않는 색깔을 뒤집어쓰고 파리들은 맴돈다
사내가 펼쳐드는 부채는 잎맥까지 다 말라버린 나뭇잎 같다
바람이 코앞에서 우수수 떨어져 꼼짝도 않는다
몽롱해진 정신 속에 이따금 손님처럼 졸음이 찾아오고
검은 씨들이 검버섯으로 박혀 있는 사내의 꿈이 깜짝 놀라
깨어질 때, 수박 속살을 파먹는 파리들은
아무리 쫓아도 얼굴과 수박의 붉은색을 구별하지 못한다
사내가 러닝셔츠를 들춰올리고 바람을 불어넣는다
배꼽만 남아 배꼽이 썩어가는 배꼽참외들의 냄새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느냐는 듯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으름장을 놓는 사내의 가게 앞으로
비루먹은 개들이 떼지어 지나간다
제 몸을 다 토해내기라도 할 듯 헐떡이며
입 안 가득 상한 생선냄새를 질질 흘리며
사내는 사과를 하나 집어 러닝셔츠 안쪽으로 닦는다
바라보는 시선들을 깔보며 으적으적 깨물어 먹는다
목구멍까지 주름이 잡힐 갈증들이 바닥에 고개를 떨군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오후가 툭, 비닐봉지 속으로 던져진다
[감상]
캔버스에 그려질 만한 어느 여름의 과일가게 앞입니다. 대상을 스케치하듯 간결한 묘사가 이 시의 맛입니다. 이 시인의 능력은 시를 조형해낼 줄 아는 데 있습니다. 어떠한 풍경이라도 시의 틀 안에서 비틀고 은유해 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나른한 5월, 저도 이 사내처럼 자리에 비스듬히 앉아 뚜닥뚜닥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데미소다 애플맛!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퍼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