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김충규/ 다층
꽃 냄새가 있는 밤
어디서 꽃이 피는가
치약 냄새보다 환한 꽃 냄새로
누웠던 밤이 벌떡 일어선다
제 울음소리에 놀란 고양이가
그림자를 버리고
이 지붕에서 저 지붕으로 넘어가고 있다
달빛을 넘겨도
잠이 오지 않아 나는 옥상에서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우리 집에 없는 꽃이
우리 집으로 꽃냄새를 퍼뜨리고 있다
꽃 냄새가
잠으로 가는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내 속으로 들어와 주무세요, 하고
꽃의 손길이 다가와서 유혹하는 밤이다
때론 생을
무언가에 취하게 하고 싶다
그 기회에 생의 길을 바꾸어도 좋으리라
이 밤,
꽃의 남편이 되어
꽃의 품 속에서 하룻밤
푹 자고 싶다
[감상]
요즘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갈라치면 코가 벌름거려집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어찌나 아릿한지요. 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달고 있는 흰 꽃들이 나를 취하게 합니다. 이 시는 그런 마음의 정서가 가만가만 귀기울이게 합니다. 꽃냄새에서 그치지 않고 "꽃의 남편"으로 이어지는 소박한 심경은 이 봄에 느끼는 살풋함입니다. 자, 이제 님도 꽃 피울 때가 되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