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 류인서 (200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 《문학동네》시인선(2009)
촛불
어둠은 오늘도 우리의 우울한 안부로구나
얼어붙은 창(窓)을 향해 당기는 부드러운 방아쇠와
납방울처럼 다시 우리 귓속으로 떨어져 굳어가는 촛농의 말
잠든 거리로 피 흘리는 어린 불빛을 물고 사라지는 외로운 저 작은 짐승
[감상]
불빛에게 어둠이란 지독한 엄습이며, 그것을 견디는 연소는 잠시 깃들다 가는 영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바람을 가두고 스러져가는 촛불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았던 어느 생애일지도 모릅니다. 두 개의 유리창을 하나로 고정시키는 창문 고리. 방아쇠처럼 당겨 열지만 가까이 보면 귀 모양에 가깝습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의 귀를 대고 산다는 건 정말 굳은 결심입니다. 아니 불안하고 쓸쓸한 촛불의 모습입니다. 창밖으로 불빛 하나 아득히 멀어져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