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 최준 (1984년 『월간문학』,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 《시와세계》2009년 봄호
3월
목련이 피고
너의 기차가 탈선한다
햇빛 다시 투명해질 때
꼬리 긴 개가 빈 집 바라보며 컹컹, 짖을 때
먼 산에 그 투명한 햇빛 그 컹컹 소리
스며들어 눈시울 붉을 때
언젠가 지나간 적 있는 땀 젖은 길섶
목련 나뭇가지가 막 피워낸 제 잎을 견디며
오후를 버틸 때
황혼에서, 다시 황혼까지
태양이 흘러간 길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달의 완성을 꿈꾸며 어둠을 한없이 파먹고 있는
60억 개의 붉은 심장들
동행이 죽기보다 지겨워진 지구 여행자들
너의 비행기가 추락한다
목련이 지고
[감상]
목련이 피고 지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목련은 제 잎에 겨워 중력에 이끌려 낙하를 기다리는데 나와 너는 어떤 사이를 견뎌야 할까. 이 시는 이렇게 행간과 행간의 여백으로 생각을 깊어지게 합니다. ‘기차’와 ‘비행기’는 나와 너를 교통케 하는 문명이 이룩해 놓은 수단들이겠지요. 그러나 그 기차가 탈선하고 비행기가 추락한다는 것은, 거대한 우주의 질서에 비하면 어쩌면 사사로운 사건일 뿐입니다. 목련이 피고 지는 순간에, 지구 60억 인구의 심장이 박동치지만 그 의미를 돌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3월에는 첫 행과 마지막 행처럼 무료하고 쓸쓸하게 목련이 피었다가 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