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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혀 - 김산옥

2009.04.21 13:27

윤성택 조회 수:1456 추천:123

  
《앵무새 재우기》 / 김산옥 (2005년 『시와반시』로 등단) / 현대시세계시인선 012

        검은 혀

        중국성 앞에 고인 웅덩이
        먼지 낀 비닐천막과 구름이 떠가는 하늘을 담고
        죽은 듯 고요히 가라앉아 있다가
        자전거바퀴를 따라가며 요동을 친다
        한가로이 바람이 지나갈 때도
        모기 한 마리 스쳐갈 때도
        빨아먹을 것을 찾아 꿈틀거리는 혀
        오토바이가 고랑을 치고 가도        
        덤프트럭이 뭉개고 달려가도
        모래알 박힌 혀가 끊어지지 않는다
        달궈진 아스팔트 바닥에 붙어
        수시로 뽑혀 나온다
        상처가 날 때마다 길이가 늘어나는 검은 혓바닥
        무심한 내 발 밑에서
        뒤틀리기 시작한다

        
[감상]
비가 내린 후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이 시는 검은 혀로 표현합니다. 식탐과도 같은 자극은 그곳을 스쳐 반응케 하는 자전거 바퀴며 바람이며 오토바이, 덤프트럭 같은 것이겠지요. 이렇게 핥는다는 것은 물웅덩이가 세상을 소화하는 방식입니다. 물웅덩이를 이처럼 혀로 비유한 것은 시인만의 직관적인 관찰입니다. 비는 밤새 내리고 개나리 노란 꽃들도 흩어져 점점이 길 위의 혀에 내려앉았습니다. 이 혀가 없었다면 나무는 말라버릴 것이고 땅들은 메말라 갈라졌겠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혀가 받아들이는 것들은 또 무엇의 풍경이었을까, 채소며 육류며 생선의 그 먼 시간의 웅덩이들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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