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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손의 기억 - 강인한

2009.11.14 14:41

윤성택 조회 수:926 추천:115

  
《입술》 / 강인한 (1967년 《조선일보》로 등단) / 《시학》시인선 043  

          빈 손의 기억

        내가 가만히 손에 집어 든 이 돌을
        낳은 것은 강물이었으리
        둥글고 납작한 이 돌에서 어떤 마음이 읽힌다
        견고한 어둠 속에서 파닥거리는
        알 수 없는 비상의 힘을 나는 느낀다
        내 손 안에서 숨쉬는 알
        둥우리에서 막 꺼낸 피 묻은 달걀처럼
        이 속에서 눈 뜨는 보석 같은 빛과 팽팽한 힘이
        내 혈관을 타고 심장에 전해 온다
        왼팔을 창처럼 길게 뻗어 건너편 언덕을 향하고
        오른손을 잠시 굽혔다가
        힘껏 내쏘면
        수면은 가볍게 돌을 튕기고 튕기고 또 튕긴다
        보라, 흐르는 물 위에 번개 치듯
        꽃이 핀다, 핀다, 핀다
        돌에 입술을 대는 강물이여
        차갑고 짧은 입맞춤
        수정으로 피는 허무의 꽃송이여
        내 손에서 날아간 돌의 의지가
        피워내는 아름다운 물의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빈 손아귀에 잠시 머물렀던 돌을 기억할 뿐.
        
        
[감상]
광물질의 단단한 덩어리일 뿐인 ‘돌’이 하나의 생명으로 쥐어집니다. 상상이 현실로 실재화되고 그에 동화되는 것이 시 읽기의 즐거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세밀한 관찰로 경이롭게 펼쳐지는 자연과, 그것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른손을 잠시 굽혔다가/ 힘껏 내쏘’는 ‘나’와 ‘돌’의 조응에서 빚어지는 조화도 역동적이면서 아름답고, 돌이 수면을 스치는 묘사도 간결하고 선명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처럼 시인의 마음을 거치면 새로운 생명의 의미로 되돌아보게 됩니다. ‘청년으로 살고 사랑하였으므로’ 그 청년을 여기에서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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