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저수지 - 김충규

2001.05.10 09:52

윤성택 조회 수:1371 추천:266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 김충규/ 다층


          저수지
                       
        바닥 전체가 상처가 아니었다면 저수지는
        저렇게 물을 흐리게 하여 스스로를 감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수지 앞에 서면 내 속의
        저수지의 밑바닥이 욱신거린다
        저수지를 향해 절대로 돌멩이를 던지지 않는다
        돌멩이가 저수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동안
        내 속의 저수지가 파르르 전율하는 것이다
        잔잔한 물결은 잠들어 있는 공포인 것이다
        상처가 가벼운 것들만 물 속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다닐 수 있다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그들을 잡으면 안 된다
        그들은 저수지의 상처가 키운 것,

        저수지를 떠날 때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상처 가진 것에 대해 연민 혹은 동정을 가지면
        몸을 던지고 싶은 법,
        그런다고 내 속의 저수지가 환해지는 것이 아니다




[감상]
그의 시는 항상 생각하지 못했던 풍경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 낼 수 있는 훌륭한 더듬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저수지"는 시인의 독특한 시선도 시선이거니와, 부정의 어투로 더욱 긍정을 만들어내는 은유에 감복하게 됩니다. "상처가 가벼운 것들만 물 속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다닐 수 있다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그들을 잡으면 안 된다/ 그들은 저수지의 상처가 키운 것,"에 이르러서는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더군요. 이처럼 시란 어둑한 마음에 환하게 불을 켜는 스위치 같은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어둑한 내면의 복도를 더듬으며 스위치를 찾으려 그처럼 애쓰는 것은 아닌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11 빛을 파는 가게 - 김종보 2001.07.16 1694 322
1110 카페 리치에서 - 곽윤석 [3] 2001.07.18 1570 304
1109 길에 관한 독서 - 이문재 2001.07.19 1574 291
1108 온라인 - 이복희 2001.07.20 1361 306
1107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 황인숙 2001.07.23 1323 302
1106 푸른 밤 - 나희덕 [1] 2001.07.27 1900 268
1105 낡은 의자 - 김기택 [1] 2001.07.30 1574 248
1104 나는 시간을 만든다 - 박상순 2001.07.31 1437 255
1103 기차는 간다 - 허수경 [2] 2001.08.01 1568 236
1102 나무는 뿌리로 다시 산다 - 이솔 2001.08.02 1359 242
1101 울고 있는 아이 - 배용제 2001.08.03 1494 254
1100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2001.08.04 1241 245
1099 소주 - 최영철 2001.08.06 1556 240
1098 섬 - 조영민 [6] 2001.08.07 2047 256
1097 무인 통신 - 김행숙 2001.08.08 1425 262
1096 편지 - 이성복 2001.08.09 2481 271
1095 Y를 위하여 - 최승자 2001.08.10 1701 265
1094 빗소리 듣는 동안 - 안도현 2001.08.13 1762 235
1093 어느 날 문득 - 김규린 2001.08.14 1779 232
1092 내 마음의 풍차 - 진수미 2001.08.16 1717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