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이하석/ 미래사
부서진 활주로
활주로는 군데군데 금이 가, 풀들
솟아오르고, 나무도 없는 넓은 아스팔트에는
흰 페인트로 횡단로 그어져 있다. 구겨진 표지판 밑
그인 화살표 이지러진 채, 무한한 곳
가리키게 놓아두고.
방독면 부서져 활주로변 풀덤불 속에
누워 있다 .쥐들 그 속 들락거리고
개스처럼 이따금 먼지 덮인다. 완강한 철조망에 싸여
부서진 총기와 방독면은 부패되어간다.
풀뿌리가 그것들 떠밀고 흙 속으로 당기며,
타임지와 팔팔 담배갑과 은종이들은 바래어
바람에 날아가기도 하고, 철조망에 걸려
찢어지기도 한다, 구름처럼
우울한 얼굴을 한 채.
타이어 조각들의 구멍 속으로
하늘은 노오랗다. 마지막 비행기가 문득
끌고 가버린 하늘.
[감상]
버려진 활주로의 정경이 한눈에 선합니다. 이런 짧은 묘사만으로도 부서진 활주로에 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전쟁이 휩쓸고 간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정적이 휩싸인 활주로에 타이어 조각 구멍 속으로 내가 하늘을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