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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 - 정지완

2001.05.26 11:30

윤성택 조회 수:1316 추천:262

99 신춘문예 당선집/ 정지완 (세계일보)/ 문학세계사  



만월

그날 밤 송암동 버스 종점 마을은 가로등 불빛 대신 달빛이 수상했네 달빛은 마을을 감싸던 안개를 가르며 조심조심 지붕 위를 걸어다녔네 달빛이 삭은 슬레이트를 밟느라 하수도 물위에는 몇 줌 떨어뜨린 금종이 부스러기들로 번들거렸네 감나무집 담장 밑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담장 밑 하수물에는 꽃이 자란다고 생각했을 것이네 호박꽃은 감나무집 지붕 위에 내려온 별 몇 개와 쑥덕거리고 있었는데
  보름달이다 보름달이다, 버스기사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밖을 내다보던 가게 주인도 보름달이다, 주뼛하여 불을 끄고, 누렁이는 버스 밑에 숨어서 킁킁거릴 뿐 도둑고양이들도 폐차 속으로 달려가 시퍼렇게 뜬 눈을 감아버렸네
  감나무집 지붕 밑, 깻잎들 소소소 잠을 깨고 바람에 밀리는 꼬소한 냄새 호박꽃잎을 흔들었네 배짱 좋은 호박꽃 몇이 별과 헤어져 지붕을 내려갔네 호박꽃은 발개한 입술 사이로 단물을 흘리며 흠뻑 창문을 더듬었네 핼쑥한 형광등 불빛! 꿀꺽, 침을 삼켰네

  거구의 사내가 종이새를 접고 있다아
  방충망을 헤집는 더듬이들,
  호박꽃잎은 그만 터질 것 같네
  툭!
  부실한 푸른 감 하나
  지붕 위에 떨어지고
  
  보름밤 감나무집 지붕 위, 새까만 호박 몇이 사생아 같았네 무슨 날짐승 소리 들리는 듯도 했는데, 달빛이 안개에 젖은 빨래를 말리고 있었네



[감상]
이 시에서 주목할 부분은 서정입니다. 달밤 숨막히는 사랑이 보이고, 아름다운 풍경이 보입니다. 읽고 있으면 아! 하고 마음에 불이 들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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