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은 망했다 / 이갑수/ 민음사
放生
한 번이라도 오줌 누어 본 이라면
실감하면서 동의하리라
내가 화장실의 안팎을 구별하여 주면
오줌은 내 몸의 안팎을 분별하여 준다
따지고 보면 그게 얼마나 기특한 일인지
어떤 때 나는 소변 쏟다 말고 쉬면서 잠깐
오줌붓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콜라를 부어도 막걸리를 넣어도
정수되어 말갛게 괸 오줌은
몸 속 욕망의 바위틈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무겁게 짓눌리고 시달렸는지
맨 마지막 구멍으로 헤엄쳐 와서는
나오자마자 거품 물고 하얗게 까무라친다
내가 잠깐 방뇨하면
오줌은 오래 나를 방생한다
[감상]
오줌에서 방생까지 이르는 상상력이 시원시원합니다. 오줌을 ‘정수’로 보는 시선도 흥미롭고, ‘몸 속 욕망의 바위틈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무겁게 짓눌리고 시달렸는지’의 발견이 이채롭습니다. 결국 몸을 방생하는 오줌의 자리바꿈은 주체적인 ‘나’라는 단단한 에고(Ego)를 버렸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세상으로 방생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