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의 여로》 / 김영남/ 《문학과지성사》시인선
몽대항 폐선
저기 졸고 있는 개펄의 폐선 한 척이
앞에 서 있는 여자 한 명을, 아니
그 옆의 친구들까지를
그립게 했다가 외롭게 했다가 한다.
그렇게 밀고 당기는 속성이
그 폐선 위에도 살고 있는 것인지
갈매기가 몇 마리 뜨니 더욱 그런다.
난 예 풍경을 눈에 꼭 담고 상상한다.
폐선이란
낡아 저무는 모습이 아니라
저물어선 안 될 걸
환기시키는 어떤 힘이라는 것을.
그런 힘이 밀물처럼
주변을 끌어당겼다 놓았다 할 때
그게 진짜 아름다운 폐선이란 것을.
나도 언젠가는 저처럼
누굴 그립게 끌어당겼다 놓았다 하는
몽대항 폐선이 되리란 꿈을 꾼다.
[감상]
충남 태안의 몽산포 옆에 몽대항이 있습니다. 긴 방파제 너머 갯벌과 햇살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보니 그 풍경 한 가운데 주저 없이 들어서는 서정의 힘이 느껴집니다. 싱싱한 감정의 날것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순수함이 돋보인다고 할까요. <그립게 했다가 외롭게 했다가> 폐선은 그 자체로 아득한 추억의 시원(始原)이 됩니다. 버려지고 소외된 폐선이야말로 몽대항을 있게 한 아름다운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행과 행 사이 삶을 전면으로 끌어낸 뚝심 좋은 진정성이 갈매기를 그리는 시인의 눈매와 겹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