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 문학과지성사
쉬고 있는 사람
환멸아, 네가 내 몸을 빠져나가 술을 사왔니?
아린 손가락 끝으로 개나리가 피는구나
나, 세간의 블록담에 기대 존다
나, 술 마신다
이런 말을 듣는 이 없이 했었다
나, 취했다, 에이 거지같이
한 채의 묘옥과
한 칸의 누울 자리
비천함!
아가들은 거짓말같이 큰 운동화를 사신었도다
누군가 노래한다
날 데려가다오, 비빌 곳 없는 살 속에
해 저문 터진 자리마다 심란을 묻고
그럴 수 있을까,
날 데려가다오
내 얼굴은 나를 울게 한다
아팠겠구나, 에이, 거지같이
나 말짱해, 세간의 블록담 위로
구름이 흩어진다 실밥같이 흩어진
미싱 바늘같이 촘촘한
집집마다 걸어놓은 홍등의 불빛, 누이여
어머니,
이 세간 혼몽에 잘 먹고 갑니다.
[감상]
첫행부터 범상치 않는 기운이 서립니다. 누군가는 이 시를 술 먹고 주정을 적었구나 싶기도 한데, 이 시는 가만히 읽을수록 의식의 변화와 흐름, 그리고 외로움 등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비빌 곳 없는 살 속"에서 잠시 멈춰 "삶"을 내가 잘못 옮긴 것은 아닐까 생각되어 시집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살이구나. 나를 데려갈 곳은 어쩌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갈 스킨쉽이구나. 환멸이 술 사러 간 동안, 서둘러 마음을 잔을 비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에이, 거지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