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편지/ 권혁웅/ 『문예중앙』2002년 봄호
오래된 편지
- 신발에 담겨 있는 것 3
이 편지는 목동에서 왔다 아파트 단지를 오래 지나쳐 왔다 목동의 도
로는 일방통행이다 문자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지런했다 소인(消
印)은 둥근 발자국이다 둥그런 발을 가진 사람이 뒤뚱거리며 내게로 왔
다 그게 개봉이다
목동의 편지는 네모반듯하다 목동의 문장(文章)은 일방통행이다 문자
의 행렬이 목동에서 시작되었다 서부간선도로나 내부순환로에 흘러든
글자들로 미등은 깜박거렸을 것이다 추월이나 과속, 그게 편지의 버릇
이다
목동의 길은 복잡하다 한 번 단락을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 오래 우
회해야 한다 열리고 닫히는 것, 그게 봉투의 일이다 둥그런 발을 가진
사람이 이곳을 디디고 갔다 봉투가 기우뚱했다 문자들이 사방으로 이만
총총……흩어졌다
[감상]
어느 날 배달된 편지, 혹은 당황스럽게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온 나의 편지. 얼마큼 시간의 궤적을 그리며 나에게 왔을까. 이 시는 그런 사유에서 시작됩니다. 편지가 마치 자동차라도 되는 것처럼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울이라는 봉투에 놓여진 자잘한 활자들이 아닐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