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요나/ 김혜순/ 2002년 『현대문학』3월호
그녀, 요나
어쩌면 좋아요
고래 뱃속에서 아기를 낳고야 말았어요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했는데
사랑을 하고야 말았어요
어쩌면 좋아요
당신은 나를 아직 다 그리지도 못했는데
그림 속의 내가 두 눈을 달지도 못했는데
그림 속의 여자가 울부짖어요
저 멀고 깊은 바닷속에서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그 여자가 울어요 그 여자의 아기도 덩달아 울어요
두 눈을 뜨고 당신을 보지도 못했는데 눈물이 먼저 나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는 게 분명하지요?
그러니 자꾸만 자꾸만 당신이 보고 싶지요)
오늘 밤 그 여자가
한 번도 제 몸으로 햇빛을 반사해본 적 없는 그 여자가
덤불 같은 스케치를 뒤집어쓰고
젖은 머리칼 흔드나봐요
이파리 하나 없는 숲이 덩달아 울고
어디선가 함박눈이 메아리쳐 와요
아아, 어쩌면 좋아요?
나는 아직 태어나 보지도 못했는데
나는 아직 얼굴이 다 빚어지지도 못했는데
[감상]
이 시가 왜 오늘따라 가슴에 다가오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어이없는 일에 휘말려, 내가 써야할 시들이 그리 울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