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내 인생』/ 정끝별 / 세계사
왼손의 사랑
버린 사랑 왼손으로 쓰네
나는 사랑의 왼손잡이
CLOSE UP (느리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권태로운 방 쪽으로 열려진 창문 밑 반대로 놓인 수
화기와 쓰다만 엽서 왼쪽에 거꾸로 깎다만 사과 물끄러
미 왼손 끝에서 덧나는 희망 보이네 물고기뼈처럼 금지
된 그녀
내가 희망하는 것은
그가 아니었네 그의 사랑도
단지 나를 향한 사랑
위태롭게, 내가 빠져들었네
나는 나의 노예
나는 금지되네
LONG SHOT (무미건조하면서 지루하게)
길 밖으로 상실한 그녀 흘러가네 지하철을 타고 쇼핑
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설겆이
를 하다 뜨거운 두 손에 이마 묻네 털어내지 못한 사랑이
발목 적시네 차가운 그녀
내가 멀리 있네
내 사랑 피어 혼자서 젖고 있네
잊혀지고 싶은 나처럼 그를 잊고 있네
나는 나의 노예, 용서하라
[감상]
'왼손'이라는 의미에서 느껴지는 상상력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