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김언희 / 세계사
허불허불한
막차를 놓치고
저녁을 떼우는 역 앞 반점
들기만 하면 하염없이 길어나는 젓가락을 들고
벌건 짬뽕국물 속에서 건져내는 홍합들…… 불어터진
음부뿐이면서 생은, 왜
외설조차 하지 않을까
골수까지 우려준 국물 속에서
끝이 자꾸만 떨리는 젓가락으로 건져올리는
허불허불한 내 시의
회음들, 짜장이
더글더글 말라붙어 있는 탁자 위에서
일회용 젓가락으로 지그시
빌려보는, 이
상처의
모독의
시, 시, 시, 시울들………
[감상]
슬픈 외설일까요. 이 시는 왠지 쓸쓸합니다. 시에 대한 의지와 그리고 여성성의 피폐한 이미지들. 막차를 놓치고 짬뽕을 먹는 그.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외설은 삶의 무의미와 상통하는 듯 보입니다. 발기가 되지 않는 기술記述도 능력이리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