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비상구』/ 이희중 / 민음사
여주인공
그녀는 아름답다 우리는 표를 산다 작은 우리의
빛을 모아 아름다운 그녀에게 온통 밝음을 준다
못난 우리가 어둠을 견디는 동안 그녀는 곧은 코
로 의지의 또렷함을 꾸미고 맑은 눈으로 마음의
깨끗함을 증명하며 반듯한 이마와 날렵한 몸매로
자신의 별난 존재라고 설렁거린다
누구든 그녀보다 객관적으로 아름다울 수 없다
간혹 부분적으로 우월할 수 있으나 총체적으로 열
등하며 일시적으로 행복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불행하다 이야기가 슬프든 아니든 그녀는 화면 밖
의 세상을 압도하고 어둠 속에 숨죽인 우리를 제
압한다 나는 너희와 달라 그래, 우리가 원했던 일
어둠 속에 벨리 울리고 우리는 보잘것없는 스스
로의 빛을 돌려 받는다 나를 돌려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부신 눈을 비비며 밝아진 그래서 사소한
현실을 확인한다 적응한다 영화관 밖에서 우리는
선의 대변자가 아니며 미의 화신이 아니다 단지
비극의 단역 희생의 대역에 지나지 않는다
[감상]
수원역에 가면 성인전용 영화관이 있습니다. 그곳은 언제나 담배 연기가 자욱하며 정말 삼류극장에서 한때처럼 쓸쓸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여주인공은 늘 우리에게 탐미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구령을 하듯 적당한 호흡의 간격으로 시간을 죽여줍니다. 가끔 이런 시가 읽히는 날은 나 수원역 그 영화관 뒷자리에서 군모를 뒤로 돌려쓰고 앉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끝내 화장실로 뛰어 갔던, 막막한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