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하나를 사이로』/ 최영숙 / 창작과비평사
폐타이어가 있는 산책길
종점, 길은 언제나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막막하게
생의 변두리를 도는 자
외곽에서 중심을 구하는 자의 배경에는
벌판과 바람 길은 휘어져
어디에 닿았는지 가늠할 수 없다
삶은 단지 스쳐가거나 봄볕에
살을 말리는 뿌연 것,
어느날 아주 먼 어느날
우리가 인연이라 말하던 순간도 다 쓰고 나면
바람 빠진 폐타이어 닳아진 허울만 남아
한곳에 쌓일 것이다 재생의 날을 기다리며
우연한 봄날의 담에 기대다 보면
지나온 길의 어디쯤 진실도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들
먼지를 풀풀 날리며 덤프트럭이 지나고
갓 스물의 청춘이 노래한다 마른 연기
피어오르는 들판의 한끝 희망은 그런 대로
연명하기에 좋았으나 몸의 바퀴가 닳아 멈추었을 때
내 앞에 놓인 밥그릇 하나,
햇살이 가득 담긴 사발을 놓고 조는 듯 깨이는 듯
등허리며 머리카락 사이로 따뜻한 기운이 흐르고
길은 그때부터 시작인지 모른다
[감상]
"연명한다는 것, 나는 멀리 떠나왔다. 이제 다시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오직 무덤을 향해 질주하는 시간에게 멀미를 느낄 뿐."이라고 제가 시집에 적어 넣었던 글을 다시 읽습니다. 소외된 것에 대해 詩는 관심이 많습니다. 어쩌면 그 소외된 것들에게서 세상을 읽으며 점자책처럼 희망을 더듬고 싶은 지도 모릅니다. 이 시는 볕 좋은 담에 쌓아 올려진 폐타이어에게 청춘을 묻습니다. 이 질문은 폐타이어에게서 우리의 세월을 읽는 동시에, 소멸해 가는 것에 대한 아련한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 길은 시작이라고 지나는 소녀의 콧노래에 멈칫, 졸고 있던 개가 컹컹 짖어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