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것들』/ 박청호 / 문학과지성사
귀향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자꾸 토하면 우물마저
기어나올 거라며 나무랐다
토하는 건 머리가 아파서, 라고
변명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뱃속에 우물을 넣고
다니는 놈은 생전에 처음이라며
의사가 슬리퍼를 끌고 퇴장하자
어머니가 우셨다
얼마 전 우물에 빠진 어머니를 건져올렸기 때문에
뱃속에 물고기들이 우글거리는 것이라며
나를 마구 비난했다
어머니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머니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내 자식이 나를 낳으려고 어딘가에서
잉태되고 있을 것이다
병원에서 빠져나가자고 다짐하는데
영안실에 누워 있던 아버지마저 되살아나서
나를 붙들고 통사정했다
고향을 버리지는 마라,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내장을 열고
근심의 우물 속에 들어앉아
노쇠한 바다를 접어 한쪽에 밀어두고
잠시 쉬기로 했다
잠들면 깨워주세요 어머니
의사한테 복수하러 가야 하니까
날 왜 살려두었는지 자백받아야
살지 도저히 이대로는.
[감상]
상상력으로 이끄는 낯선 이야기에 호기심이 자극됩니다. 끊임없이 나를 환기시키고 있다고 할까요. ‘내가 어머니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도 주제를 장악하는 스토리의 힘입니다. 이렇게 무의식은 '우물'과 함께 끊임없이 반응합니다. 천천히 읽고 나면 귀향에 대해 번뇌하는 화자의 마음이 읽힙니다. 시집 맨 뒷장에 '유락문고' 딱지가 있고 그 옆에는 부장품처럼 모기 한 마리 납작 눌려진 채로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