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에 달하다』 / 김소연 / 문학과지성사
버리고 돌아오다
지루한 글이었다 진전 없는 반복, 한 사람의 생 읽
어내느라 소모된 시간들, 나는 비로소 문장 속으로 스
며서, 이 골목 저 골목을 흡흡, 냄새 맡고 때론 휘젓
는 문장들, 군데군데 마지막이라 믿었던 시작들, 전부
가 중간 없는 시작과 마지막의 고리 같았다, 길을 잃
을 때까지 돌아다니도록 배려된 시간이, 너무 많았다,
자라나는 욕망을 죄는 압박붕대가 너무, 헐거웠다, 그
러나 이상하다, 너를 버리고 돌아와 나는 쓰고 있다,
손이 쉽고 머리가 맑다, 첫 페이지를 열 때 예감했던
두꺼운 책에 대한 무거움들, 딱딱한 뒷표지를 덮고 나
니 증발되고 있다, 숙면에서 깬 듯 육체가 개운하다,
이상하다, 내가 가벼울 수 있을까, 무겁고 질긴 문장
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감상]
처음에 책을 읽을 때 갑갑하고 책 속의 활자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재의 나는 없어지고, 책 속으로 풍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를 그 안에다 버리고 돌아왔던 것일까요. 마지막 책장을 덮으니, 마음 속이 개운합니다. 이 시는 '책 읽기의 즐거움' 으로 읽히는군요. 그런 마음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너를 버리고 돌아와 나는 쓰고 있다"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자문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