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 눈』/ 마종기/ 문학과지성사
방문객
무거운 문을 여니까
겨울이 와 있었다.
사방에서는 반가운 눈이 내리고
눈송이 사이의 바람들은
빈 나무를 목숨처럼 감싸안았다.
우리들의 인연도 그렇게 왔다.
눈 덮인 흰 나무들이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복잡하고 질긴 길은 지워지고
모든 바다는 해안으로 돌아가고
가볍게 떠올랐던 하늘이
천천히 내려와 땅이 되었다.
방문객은 그러나, 언제나 떠난다.
그대가 전하는 평화를
빈 두 손으로 내가 받는다.
[감상]
시를 읽을 때 대체로 울림을 주는 요소 중 하나는 "의인擬人"의 것들입니다. 사물을 표현하더라도 어느 순간 읽는이의 일상을 감동으로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이 시 1연의 "우리들의 인연도 그렇게 왔다"의 표현이 그러합니다. 앞부분은 자연을 읊었다면, 다음 이 문장은 읽는이와의 소통의 장치로 작용합니다. 두 번째 연은 화자의 시선이 넓어지면서 탁 트인 정경을 보여줍니다. "방문객"에 대한 것보다 그 서정이 더욱 좋아보이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