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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바꾸고 싶어하다 - 김점용

2002.01.23 10:24

윤성택 조회 수:1235 추천:176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 김점용 / 문학과지성사


             아버지를 바꾸고 싶어하다
                        ― 꿈 61


  허름한 판잣집, 어떤 할아버지가 찾아와 내가 자기 아들이라고 한다 전철에서 보았던 노인이다 난 아버지를 불렀다 젊은 아버지는 증거를 대보라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다 눈이 움푹 들어가고 얼굴엔 턱수염이 까칠까칠 초라한 행색이다 지하철 문 앞에서 보았던 노인이 분명하다 나는 마당에 놓인 전철의 빈 의자만 바라보고 있다 비닐 지붕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아버지는 천성이 게으르고 무심했다
        동네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나는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아버지의 허무는 신작로의 아스팔트처럼 단단했다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뽑지 않았고
        고물 라디오의 건전지만 갈아 끼웠다
        뒤안의 대추나무는 십수 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지 않았다
        또 다른 어머니의 제사가 돌아왔고
        어린 형은 세 돌을 못 넘기고 앞산 애기장이 되었다
        에이구 또 딸이구먼
        남수 어머니가 피 묻은 손을 닦으며 말했다
        허락도 없이 대추나무를 베어버린 건 잘한 짓이었다
        아버지는 스스로 실패작이었다





[감상]
시집 대부분이 이런 구성으로 독특한 스타일의 시입니다. 일테면 꿈과 현실을 이분화 시킴으로서, 거기에서 오는 상호유기성을 시의 울림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좋습니다. 앞부분의 산문은 꿈의 부분이고, 뒷부분은 현실의 부분입니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기에 더더욱 그런 상호작용이 있지 않나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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