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어떤 그리움을 타고 너에게로 갈까 - 김경진

2001.10.19 09:52

윤성택 조회 수:2026 추천:202

『나도 생리를 한다』/ 김경진/ 시와 사람

             어떤 그리움을 타고 너에게로 갈까

             어떤 그리움을 타고 너에게로 가야 하는 걸까
             덕유산으로 통하는 영동에 다다라서야
             칠월 마른 장마에 타는 어린 벼들이
             시퍼렇게 날을 세운 채 가문 하늘을 징그러워 하며
             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삶의 궁벽진 터널을 여러 번 지나고
             터널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뭉클한 깃털을 펼친
             구름 무더기가 시선을 훔쳐간다
             줄담배를 피워대며 고뇌했던 지난 밤을
             꼬박 보내고 나서도 나는 네게 도달할 수 있는
             그리움의 통로를 찾지 못했다
             폐교가 예정된 낡은 분교 옆으로 한때 영화로웠을
             호사스러운 기억들을 덮쳐 담고 개울이 멈춰 서 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멸망 직전에 더 섬뜩하게
             각인 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영동역을 완전히 빠져나가서도 힐끗 스치기만 했던
             생강밭이 나를 따라온다 혹,
             뻣뻣이 하늘을 찌르고 서 있는
             생강줄기 사이, 잎새가 부딪치는 순간
             너를 향한 공간이동의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닐까

[감상]
그리움이 사무치는 일, 이는 詩가 되려는 모태부터가 하나의 방향성을 지닙니다. 이 시는 곳곳에 "그리움"의 더듬이를 통해 사물을 바라봅니다. "줄담배를 피워대"던 밤이나, "생강줄기 사이, 잎새가 부딪치는 순간"이나 언제나 시인은 그리움의 대상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간절해지면 시가 써진다는 말,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리울 때, 詩는 시골의 한참만에 들르는 우편배달부처럼 아득해지는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51 근미래(近未來)의 서울 - 이승원 2002.10.11 1063 208
150 밤 골목 - 이병률 2002.11.12 1062 158
149 쿨럭거리는 완행열차 - 송종규 2002.09.05 1062 179
148 강풍(强風)에 비 - 김영승 2002.06.25 1062 171
147 옹이가 있던 자리 - 이윤훈 2002.01.31 1062 198
146 기록들 - 윤영림 2009.02.16 1061 114
145 126번지 - 이승원 2003.12.19 1061 174
144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 - 박정대 2003.06.24 1061 192
143 나는 그 나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 정채원 2002.10.30 1061 181
142 산촌 - 김규진 2002.11.08 1060 170
141 유년 - 정병근 2002.09.16 1060 189
140 활엽수림 영화관 - 문성해 2003.04.08 1059 183
139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 한혜영 2002.07.12 1058 176
138 2011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2011.01.04 1056 71
137 밤이면 저승의 문이 열린다 - 김충규 2003.07.05 1056 186
136 댄스 파티 - 이정주 [1] 2004.06.16 1055 171
135 포도를 임신한 여자 - 장인수 2003.08.12 1055 180
134 때늦은 점심 - 이지현 [1] 2003.04.02 1055 158
133 거리에서 - 유문호 2002.12.31 1055 178
132 마당의 플라타너스가 이순을 맞은 이종욱에게 - 이종욱 2005.03.21 1054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