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란/ 문학사상 2001년 12월호
따뜻한 슬픔
너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차마, 사랑은 여윈 네 얼굴 바라보다 일어서는 것. 묻고 싶은 맘 접어 두는 것. 말 못하고 돌아서는 것. 하필, 동짓밤 빈 가지 사이 어둠별에서, 손톱달에서 가슴 저리게 너를 보는 것. 문득, 삿갓등 아래 함박눈 오는 밤 창문 활짝 열고 서서 그립다. 네가 그립다. 눈에게만 고하는 것. 끝내, 사랑한다는 말따윈 끝끝내 참아내는 것.
숫눈길,
따뜻한 슬픔이
딛고 오던
그 저녁.
[감상]
말이 참 이쁘지요. 잠언 같은 글귀들이 눈에 쏘옥쏙 들어옵니다. 이 시는 "문학사상" 신작시조에 들어 있던 시인데 내재율만 충실히 시조일 뿐, 외관상으로는 현대시 같군요. 인간이 진화한다면 마땅히 시도 정신문화에 기여하는 것만큼 진화한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시를 읊든 시조를 읊든 중요한 것은 "읽히는 것"에 관한 울림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