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2001 여름호/ 신혜정 (2001 대한매일신춘당선) / 창작과비평사
그믐밤
생리통의 밤
진통제 몇알로 그믐밤의 컴컴한 시간을 지날 때면
뭉텅뭉텅, 몸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것 같아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어
그럴 때면 어머니
‘니 배고 아이스크림이 참 묵고 싶었다’하시며
그때 얘기를 해주셨거든
그 더운 여름밤 우리 아버지
아이스크림 사러 가신다며
통금시간이 되도록 오지 않으셨다는데
좁은 골목길엔 가로등도 없어
컴컴한 그믐밤,
어머니 문밖에서 아버지 기다리는데
거나하게 술 취한 우리 아버지
검은 봉지에 들고 오신 아이스크림
‘묵으라’하시며 건네주시는데
한돈짜리 결혼반지가 보이지 않아
이미 녹은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눈물처럼 흘러내렸다는데
그 더웠던 여름밤,
어머니와 내가 그 눈물을 함께 먹었다는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오늘,
자꾸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거든
냉장고 가득 아이스크림을 채우고
잠을 청하는데
생리가 시작하듯
몸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것 같아
나는 아이스크림에 숟가락 두 개 꽂아놓고
자궁 속 깊숙이 들어오실
우리 엄마 기다려보는데
[감상]
시는 읽으면 울림이 전해져야 제 맛입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행간에서 묻어나는 시인의 감성이 눈에서 가슴으로 걸어옵니다. 이 시는 "생리"와 "아이스크림"의 연결고리를 통해 시적 정황을 만들어냅니다. 범상치 않는 것이 "어머니와 내가 그 눈물을 함께 먹었다는 것이었는데"와 같은 표현입니다. 마지막 연의 진폭도 만만치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