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신춘문예 당선작 / 김형미 / 진주신문
등꽃
초여름 저녁, 등꽃 향기 밀려온다
아아, 배고픈 욕정이여
퇴근길이면 술집으로 향한다 안주도 없이
술로 채워지는 위를 생각하기엔 나는 아직 젊다
이미 오래 전부터 칫솔질을 할 때마다 구토가 일었으나
묵직하게 젖어오는 아랫도리
아릿한 아픔으로 부풀어오르는 유두
담배 한 대로 삭히기엔 무척 오랜동안 *굴풋했다
빈 방에 누워 자위를 즐기는 일만큼 가슴 허한 일 또 있으랴
이불이 마른 땀으로 축축해질 때쯤
세계가 내 안에서 밑동째 뽑혀져 나가는 두려움
그러나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욕정이라면
내 그리움은 절망인가
절망인가, 술집의 객들은 서서히 비워지고
출구쪽으로부터 등꽃 향기 밀려와 다시 자리를 채운다
사아랑은 나의 행복 사아랑은 나의 운명
천박하지 않을 만큼만 젓가락 장단 맞추는 등꽃 향기
발끝이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빈 잔을 채운다 결국
세상의 낭떠러지는 매일같이 마주 대하는 술잔 속일지도
살고 싶은 욕망으로 끝내 귀가하고 마는,
잔인한 초여름 저녁
등꽃 향기에 젖어 젖어
* 굴풋하다 : 속이 헛헛한 듯하다.
[감상]
시가 자극적입니다. 어쩌면 신춘문예라는 특성상 튈 수밖에 없는 정황이 그러하게 작용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술을 하고 담배를 하고 자위를 하고, 詩로 드러낼 수 있는 모든 저잣거리의 일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詩가 그렇게 고상한 것이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직도 시인을 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