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 동백』/ 송찬호 / 문학과 지성사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 된 얼룩이 있다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누런 냄새, 누런 자국의,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그 건망증이다.
바스락바스락 건망증은 박하 냄새를 풍긴다
애야 이 사탕 하나 줄까, 아니에요, 할머니
할머닌 벌써 십 년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감상]
이 시는 마치 무의식적인 정신의 충동을 자동기술하는 것처럼, 생각의 흐름을 쫓아갑니다. 그 영감靈感은 얼룩에서 건망증으로, 또 박하향으로 향해 갑니다. 결국 이러한 정황의 알레고리에서 현실로 빠져나오는 마지막 행은, 그 집안의 내력을 암시하는 울림의 장치가 됩니다. 이런 詩의 가장 큰 장점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에 있습니다. 첫행과 제목을 읽는 동시에 간파되는 뻔한 시들은 맛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맛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