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방생 - 이갑수

2001.06.05 11:15

윤성택 조회 수:1213 추천:264

神은 망했다 / 이갑수/ 민음사



       放生


        한 번이라도 오줌 누어 본 이라면
        실감하면서 동의하리라
        내가 화장실의 안팎을 구별하여 주면
        오줌은 내 몸의 안팎을 분별하여 준다
        따지고 보면 그게 얼마나 기특한 일인지
        어떤 때 나는 소변 쏟다 말고 쉬면서 잠깐
        오줌붓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콜라를 부어도 막걸리를 넣어도
        정수되어 말갛게 괸 오줌은
        몸 속 욕망의 바위틈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무겁게 짓눌리고 시달렸는지
        맨 마지막 구멍으로 헤엄쳐 와서는
        나오자마자 거품 물고 하얗게 까무라친다

        내가 잠깐 방뇨하면
        오줌은 오래 나를 방생한다



[감상]

오줌에서 방생까지 이르는 상상력이 시원시원합니다. 오줌을 ‘정수’로 보는 시선도 흥미롭고, ‘몸 속 욕망의 바위틈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무겁게 짓눌리고 시달렸는지’의 발견이 이채롭습니다. 결국 몸을 방생하는 오줌의 자리바꿈은 주체적인 ‘나’라는 단단한 에고(Ego)를 버렸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세상으로 방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1 비닐하우스 밤기차 - 이승주 2011.02.21 1089 116
70 시,시,비,비 - 김민정 2010.01.16 1089 116
69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 허수경 2009.11.04 917 116
68 검은 방 - 박장호 2008.10.15 1258 116
67 개인의 질량 - 이산 2007.12.06 1435 116
66 매포역 - 전형철 [1] 2007.11.06 1210 116
65 태양의 계보 - 홍일표 2007.11.05 1128 116
64 빈 손의 기억 - 강인한 2009.11.14 926 115
63 밤의 연약한 재료들 - 이장욱 2008.11.03 1384 115
62 사물의 말 - 류인서 2008.02.28 1320 115
61 퉁소 - 김선우 2007.10.12 1217 115
60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 류근 2011.01.28 1259 114
59 기록들 - 윤영림 2009.02.16 1061 114
58 도망자 - 이현승 2007.10.17 1101 114
57 눈을 감으면 - 김점용 [1] 2011.01.22 2491 113
56 로컬 버스 - 김소연 2010.01.19 952 113
55 불우를 씻다 - 유정이 2011.01.27 896 112
54 연리지 - 박소원 [1] 2011.01.07 939 112
53 못을 박다가 - 신현복 2009.12.07 1003 112
52 숲 - 이기선 2009.11.09 945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