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두통 - 채호기

2001.05.04 12:38

윤성택 조회 수:1393 추천:242

슬픈 게이/ 채호기 / 문학과지성사



        두통


        나는 내 머리를 오르는 중이다
        암석투성이의 그 머리를.
        바람은 기억의 머리카락을
        성기게 쓸어넘기고
        발은 길 속으로 잠수했다가
        헐떡헐떡 간신히 떠오른다.

        멀리 관자놀이에 수십 개의
        굴착기가 꽂혀 머리통을 판다.
        바위 구멍에 장착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 하고, 무너진
        머리 한쪽이 휑하다.

        내가 넘어가는 험준한 머리.
        이 산을 비의 밧줄이
        친친 동여매고
        끌어당겼다 늦췄다
        늦췄다 끌어당긴다.

        높이 그 끈을 쥐고 날아가다가
        어디쯤에선가 놓겠지, 슬쩍,
        끈이 끊어지던가......

        머리가 떨어지며 몸을 관통한다.
        망가진 몸통. 속이 엉망이다.

        갈라진 산골짝에 메아리치는
        비명.

        피가 말라버린 억새가
        머리에 가득한데
        나는 성냥을 그어
        억새 허연 평원에 불을 지른다.
        뜨겁다. 머리가. 훨훨 탄다.




[감상]
채호기 시인은 1988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시단에 등장했으며, 시집으로 『지독한 사랑』등이 있는 분입니다. 두통을 산이라는 사물에 접목시킨 점이 새롭습니다. 읽는 동안 내내 기발하다란 생각이 떠나질 않네요. 특히 마지막 부분, 불을 지르는 행위가 인상적입니다. 저 역시 아까부터 머리 속에 불이 난 모양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51 빗방울 화석 - 배한봉 2003.01.07 956 168
50 누와르론(論) - 박수서 2003.08.07 955 149
49 푸르른 소멸·40 [즐거운 놀이] - 박제영 [1] 2002.11.14 955 172
48 붉은 염전 - 김평엽 2009.12.10 954 131
47 뻘 - 유지소 2002.12.13 954 161
46 로컬 버스 - 김소연 2010.01.19 952 113
45 무너진 다리 - 송재학 2003.01.02 950 170
44 황실대중사우나 - 전윤호 2002.12.10 950 191
43 자폐, 고요하고 고요한 - 최을원 2009.12.15 949 129
42 1월의 폭설 - 홍신선 2003.02.06 949 182
41 목수의 노래 - 임영조 2002.12.06 949 167
40 수궁에서 놀다 - 박진성 2003.02.11 947 162
39 엘리스와 콩나무 - 김참 2002.12.17 946 169
38 숲 - 이기선 2009.11.09 945 112
37 빙점 - 하린 2011.01.15 941 81
36 상상동물 이야기·5 - 권혁웅 2003.03.28 941 154
35 연리지 - 박소원 [1] 2011.01.07 939 112
34 경비원 박씨는 바다를 순찰중 - 강순 2003.04.30 938 160
33 사랑의 물리학 - 박후기 [1] 2009.11.05 937 105
32 죽음의 강습소 - 박서영 2003.01.09 937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