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송찬호 / 민음사
바구니
언제나 하늘은 빈 바구니로 내려왔다
바구니가 비었으니 아직 살아있나보다
여인은 다시 밥바구니를 하늘로 올려보냈다
아, 뭉클한 밥바구니가 한 입에 하늘로 꺼져들어가곤 하였다
옷을 넣어 보내면 금방 피고름 빨래가 되어 내려왔다
여인의 몸도 점점 꺼져 들어갔다
기약 없는 세월은 물같이 흘렀고 그 물가에서
여인은 시름없이 빨래를 하였다
물은 날마다 더럽혀져 갔다
그 물이 흘러가는 어디선가 다시 근심 많은 여인들이
더럽혀진 물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빈바구니 속에서 아이는 끊임없이 울었다
여인은 바구니처럼 웅크리고 앉아 꼼짝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자라 여인을 버리고
다시 이 지상을 떠날 때까지
날마다 바구니 가득 그렇게 오르고 싶었던 하늘
오, 저 밑 버림받은 세상에는
몸 움푹움푹 패인 빈 바구니 같은 늙은 여인들만 남아 뒹굴고 있다
[감상]
송찬호 시인은 2000년 김수영 문학상과 동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고,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등의 시집이 있습니다. 이 시 "바구니"는 한마디로 상상력으로 인해 경이롭습니다. 바구니가 무엇일까라는 것은 중요하게 읽히지 않고, 그 행위에 얽힌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관념적이지만 전혀 관념적이지 않은 서사가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