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평리/ 박라연/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옥평리
토요일은 언제나
옥평리에 갔다 다리를
건너 철길 논길을 지나서
수수밭 언덕길 그곳에 가면
전학 간 순이도 좋았지만
올벼쌀 메뚜기 홍시감이 좋았다
혼자서 가는 길 쓸쓸해지면
눈감고 어디쯤 갈 수 있나 시험하다가
큰 다리 아래 숨어 흐르는 슬픔 속으로
뚝, 떨어져 눕던 아득한 그날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에 실려왔지만
그때 나는 이미 젖어서
운동화도 머리카락도 흠뻑 젖어서
지금도 툭하면 젖어서 산다
옥평리 그 길을 다시 걸을 때
속눈썹에 감겨 오는 내 살아온 날의
오솔길 철길 큰 다리 길
길모퉁이에 남아 있는 쓸쓸한 그림자
제 그림자를 밟고 떠나가는
눈뜨고 가는 길도 안 보이는 우리들
우리들 살아서 사는 길
[감상]
추억이 살고 있는 시입니다. 조금 외진 곳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누구나 한번쯤 연상되는 풍경이네요. 그래요, 살아서 지금 내가 살아서 옛 그곳에 가면 추억이 한창 상영중일 겁니다. 잔잔하면서 유년의 풋풋한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아쉬워서 한 번 더 읽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