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첫 키스 - 함기석

2008.04.08 17:52

윤성택 조회 수:2527 추천:192

《뽈랑공원》 / 함기석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 《문예중앙》시인선(2008)


        첫 키스

        너의 입술에서
        장미꽃이 피어난다
        새들이 날아오른다
        새들이 날아가는 호수가 보인다
        눈이 예쁜 물뱀 하나 뭍으로 올라온다
        꽃밭을 지난다
        앵두밭을 지난다
        탱자나무 울타리 지나 내게로 온다
        흰 벽돌담 넘어 내게로 온다
        미끈미끈 내게로 다가오는 어린 뱀은
        미끈미끈 내게로 다가오는 너의 혀
        두근두근 내 입술에 살을 비빈다
        나의 입술에서
        빠알간 금붕어들이 쏟아진다
        빠알간 코스모스 꽃잎들이 쏟아진다
        아 가을이다
        나는 손을 쭈욱 뻗어
        구름을 따 네 눈에 넣어준다
        해와 달을 따 네 입에 넣어준다
        하늘 가득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울려 퍼진다


[감상]
첫 키스의 황홀함을 기억하는지요? 누구에게나 겹겹의 마음 깊은 곳에 보드랍고 연한 그날의 이미지가 있을 듯싶습니다. 이 시는 그런 아련한 감정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미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차피 세상이란 인간의 마음속에 비춰진 풍경이 아니던가요. 보려고 하는 것에만 눈의 초점이 고정되고 나머지는 다만 뿌연 여백일 뿐이니까요. 두렵기도 하고 매혹적이기도 한 <예쁜 물뱀>이 복잡미묘한 그날의 심경을 훑고 지나고, 촉감 하나로 정신의 무한한 공간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71 소나무 - 마경덕 [1] 2005.01.19 1867 201
1070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 박미라 [2] 2006.08.26 1864 210
1069 여자들 - 김유선 2001.04.21 1863 291
1068 안녕, UFO - 박선경 2006.05.25 1859 267
1067 인생 - 박용하 [2] 2003.10.10 1856 159
1066 뺨 - 함순례 [2] 2006.07.25 1854 225
1065 옥상 - 정병근 [3] 2005.11.03 1847 227
1064 오존 주의보 2 - 문정영 [1] 2001.04.07 1846 299
1063 책 읽는 여자 - 김희업 2005.09.14 1843 208
1062 삼십대 - 심보선 [1] 2008.05.27 1842 175
1061 사랑니 - 고두현 [1] 2001.07.11 1841 258
1060 왕십리 - 권혁웅 [1] 2001.04.10 1841 292
1059 당신은 - 김언 [1] 2008.05.26 1837 162
1058 별이 빛나는 밤에 - 장만호 2008.11.26 1829 128
1057 아침의 시작 - 강 정 [1] 2007.04.17 1825 164
1056 저무는 풍경 - 박이화 [1] 2006.05.02 1825 208
1055 남해 유자를 주무르면 - 김영남 2011.04.06 1824 160
1054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 박선경 2006.01.11 1823 255
1053 뒤란의 봄 - 박후기 [1] 2006.04.01 1820 233
1052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1] 2001.05.02 1817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