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돌, 허튼 층」/ 이운룡/ 《시와사람》2004년 겨울호 (1969년《현대문학》으로 등단)
막돌, 허튼 층
돌은 피를 말린 생각의 파편이다
막돌을 쌓은 허튼 층 층층이 빈틈을 헤쳐보면
과부하의 하늘이 무너져 깊이 박혀 있다
돌과 한 살 곶이 되어
코뿔소처럼 야만의 뿔을 쳐들고 너희들을 노린다
길을 내면 무너져
와글와글 어금니 가는 소리 시끄럽다
아이적 발목 걸어 눈물 뺀 돌
욕을 팔매질하여 눈에 핏발 뭉쳐진 돌
가슴속 피 멍울 한 생애 굴려온 돌
돌은 제 뿌리를 뽑아서
아랫것 짓누르고
아랫것 위에 올라타 또 아랫것들 짓밟고
층위 맨 꼭대기에 눌러앉아
에헴!
하늘이고 싶은 놈,
이름하여 막돌 허튼 층 쌓은 악명의
삶이 막돌이다, 넘치는 돌무더기
뿌리가 위로 뻗어 올라 언제나 목이 마르다
그래, 돌은
틈마다 상처를 끼워 넣는다
한때는 성(城)이었던 함성도 오래되면
파랗게 이끼 돋을 허튼 층 막돌은.
[감상]
쓸모없이 아무렇게나 생긴 돌 막돌, 그것에 부여한 치열한 성격과 의미가 감동을 이끕니다. 첫 문장이 그러하듯 직관을 지켜내는 힘은 진정 묘사의 공력입니다. 무너져 생긴 막돌은 언젠가 올려다보았던 하늘에 성겼을 것이고, 그 곳을 밟기라도 하면 ‘어금니 가는 소리’가 들릴 법도 합니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막돌처럼 산다는 건 상처에 반응하고 그곳에 던져지겠다는 저돌적인 ‘살아냄’입니다. 한낮 막돌에서 우리 인생을 반추하고, 그곳에서 ‘생각의 파편’을 읽어내는 연륜이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