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 박선경

2006.01.11 11:04

윤성택 조회 수:1824 추천:255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박선경/ 《시작》2005년 여름호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전동차 유리문에 기대어서다
        남아버린 손자국
        어둠 속 당신의 얼굴은
        플라타너스의 살아 번지는 푸른 잎맥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위로
        당신은 신문을 보거나
        나의 등 뒤에서 고개 숙여 잠이든
        떠오르지 않는 얼굴
        나의 가슴을 관통하여
        뭉클 몸 밖을 빠져 나온
        아득한 유리문 밖, 안전선에서

        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침목을 따라 바삐 달아나는 표정들
        미로처럼 어둔 통로를 빠져나간 그 자리에
        길모퉁이 플라타너스
        나는 벌써 몇 번째
        당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 데자뷰(deja-vu)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의미. 이미 와 본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나 환상. 기억의 단편화가 심하여 다른 기억들과 연관을 맺기가 어려운 경우.


[감상]
출근길 매번 지나쳤던 플라타너스가 있습니다. 그 플라타너스는 아마도 수 년 동안 잎을 틔우고 또 낙엽으로 뒹굴며, 늘 그 자리에서 서성였을 것입니다. 다만 눈이 마주친 적 없이 서로를 보지 못했을 뿐. 이 시는 그런 존재와의 조우를 통해, <인연>의 의미와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무미건조한 객차 안 사람들을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묶어내는 시선이라든가, 지하철 출입문에 찍힌 지문에서 플라타너스 잎맥을 상상하는 표현이 애틋합니다. 당신은 나를 만난 적 있습니까?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참 깊이 있는 질문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71 비 오는 날 사당동에서 총알택시를 타다 - 정 겸 2003.11.03 1044 167
1070 드라큘라 - 권혁웅 2004.01.08 1044 187
1069 수사 밖엔 수사가 있다 - 최치언 2002.05.20 1046 209
1068 소각장 근처 - 장성혜 2009.03.18 1047 110
1067 산딸나무 - 고현정 2003.04.28 1048 167
1066 가스통이 사는 동네 - 안성호 2004.01.02 1048 187
1065 술병 빗돌 - 이면우 [1] 2003.03.18 1049 176
1064 꽃 속의 음표 - 배한봉 2003.04.23 1049 187
1063 막돌, 허튼 층 - 이운룡 2004.12.07 1049 202
1062 알쏭달쏭한 소녀백과사전 / 흰벽 - 이기인 [2] 2003.08.29 1052 176
1061 석양리 - 최갑수 2002.05.23 1053 182
1060 밤이면 저승의 문이 열린다 - 김충규 2003.07.05 1053 186
1059 마당의 플라타너스가 이순을 맞은 이종욱에게 - 이종욱 2005.03.21 1054 186
1058 거리에서 - 유문호 2002.12.31 1055 178
1057 때늦은 점심 - 이지현 [1] 2003.04.02 1055 158
1056 포도를 임신한 여자 - 장인수 2003.08.12 1055 180
1055 댄스 파티 - 이정주 [1] 2004.06.16 1055 171
1054 2011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2011.01.04 1056 71
1053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 한혜영 2002.07.12 1058 176
1052 활엽수림 영화관 - 문성해 2003.04.08 1059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