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나 먹자, 꽃아》 / 권현형/ 천년의시작
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
문밖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환청에 시달리던 시절이 혹 있으신가
십이월에도 자취 집 앞마당에서
시린 발을 닦아야 하는
청춘의 윗목 같은 시절
전봇대 주소라도 찾아가는지
먹먹한 얼굴로 그가 찾아왔다
두 사람 앉으면 무릎 맞닿는 골방에서
뜨거운 찻물이 목젖을 지나 겨울밤
얼어붙은 쇠관으로 흘러가는 소리
다만 함께 듣고 있었다
야윈 이마로 방바닥만 쪼아대다
겨울의 긴 골목 끝으로 날아가는
크낙새의 목덜미를 바라보았을 뿐인데
바람이 문짝만 흔들어도 누군가
문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아
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에서
겨우내 혼자 귀를 앓았다
[감상]
청각적 이미지로 애잔하게 추억을 들려주는 시입니다. 소리는 그 자체로 운동이며 또 울림입니다. 그리하여 소리는 <찻물이 목젖을 지나>거나 <바람이 문짝만 흔들어도> 존재로 생동합니다. 구체적인 지시대상을 갖지 않았음에도 무엇인가로 갈망하는 암시적인 원천이 됩니다. 자취방에 찾아온 그와 차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마음은 왜 이리 민감하여 귀를 앓는 것인지, 누구든 쉬 찾지 못해 목을 빼고 이름을 부를까 싶은 세 번째 골목 세 번째 집. 그 소리들이 청춘의 공명통에 들어와 음악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