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랑니 - 고두현

2001.07.11 12:08

윤성택 조회 수:1841 추천:258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 민음사

  
     
       사랑니


        슬픔도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
        세상 너무 환하고 기다림 속절없어
        이제 더는 못 참겠네.
        온몸 붉디붉게 애만 타다가
        그리운 옷가지들 모두 다 벗고
        하얗게 뼈가 되어 그대에게로 가네.
        생애 가장 단단한 모습으로
        그대 빈 곳 비집고 서면
        미나리밭 논둑길 가득
        펄럭이던 봄볕 어지러워라.

        철마다 잇몸 속에서 가슴 치던 그 슬픔들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
        빛나는 뼈로 솟아 한밤내 그대 안에서
        꿈같은 몸살 앓다가
        끝내는 뿌리째 사정없이 뽑히리라는 것
        내 알지만 햇살 너무 따뜻하고
        장다리꽃 저리 눈부셔 이제 더는
        말문 못 참고 나 그대에게로 가네.



[감상]
사랑니 앓았던 느낌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 느낌을 이끌어내는 솜씨도 탁월하고요. "슬픔도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의 첫 행부터 그럴지도 모르겠는 걸? 이라는 공감을 끌어갑니다. 그리고 끝 부분 "햇살 너무 따뜻하고/ 장다리꽃 저리 눈부셔 이제 더는/ 말문 못 참고 나 그대에게로 가네"의 알레고리 또한 사랑의 절절함이고요. 사랑니 때문에 입도 다물지 못했던 시절, 울컥울컥 사랑도 아팠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71 캣츠아이 13 - 노혜경 2001.09.18 1298 224
1070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이원 [1] 2001.09.19 1434 201
1069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 송찬호 2001.09.20 1228 189
1068 품을 줄이게 - 김춘수 2001.09.21 1196 187
1067 헌 돈이 부푸는 이유 - 채향옥 [1] 2001.09.22 1318 189
1066 거리에서 - 박정대 2001.09.24 1557 196
1065 상처에 대하여 - 복효근 2001.09.25 1627 206
1064 정동진 - 이창호 2001.09.26 1511 224
1063 가을산 - 안도현 2001.09.27 2815 286
1062 장지 - 박판식 2001.10.09 1448 247
1061 聖 - 황학주 2001.10.18 1310 250
1060 어떤 그리움을 타고 너에게로 갈까 - 김경진 2001.10.19 2026 202
1059 나무기저귀 - 이정록 2001.10.23 1204 203
1058 반지 - 박상수 2001.10.26 1425 191
1057 태양과의 통화 - 이수명 [2] 2001.10.29 1304 206
1056 죽도록 사랑해서 - 김승희 2001.10.31 1703 212
1055 경계1 - 문정영 2001.11.02 1164 181
1054 12월의 숲 - 황지우 [3] 2001.11.07 1598 203
1053 미탄에서 영월사이 - 박세현 2001.11.08 1099 188
1052 손전등을 든 풍경 - 박경원 2001.11.14 1184 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