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은박 접시 - 정원숙

2005.07.15 12:56

윤성택 조회 수:1437 추천:245

<은박 접시> / 정원숙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5년 7-8월호


  은박 접시

  소풍이 너무 좋아,  소풍을 가고 있었어 커다란 트럭에 친구들과 겹겹이 쌓여
어디론가 실려 가고 있었어 제기랄, 내 매끄러운 얼굴과 위아래 겹쳐진 그들의
얼굴이 징그럽게 미끄덩거렸어 너무 좋아, 숨이 막혀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
어 참을 수밖에 제기랄,  난 소풍 간다 너무 좋아,  나는 소풍 간다 수없이 뇌까
리는데 바람이 따귀를 갈겼어 너무 좋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추락하고 있었
던 거야 제기랄, 8차선 도로 위를 날고 있었던 거야 너무 좋아,  태양을 향해 손
을 흔들어댔는데 자유를 얻었는데 티코가 그랜저가 덤프트럭이 달려들어도 너
무 좋아, 온몸은 주름투성이 어느새 팍 늙어버린 거야 제기랄,  노란 햇살이 주
름의 틈새로 차갑게 파고드는 거야 너무 좋아, 아팠어 의식은 점점 흐려지는데
제기랄,  바람보다 가벼운 이 자유의 무게 그래도 난 소풍이 너무 좋아, 풍장을
치른 내 웃음소리 허공으로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게


[감상]
트로트 음악이 달리는 트럭 창에서 솔솔 새어나옵니다. 그러다 트럭짐칸에 실린 은박접시 하나가 바람에 날아올랐겠지요. 도로바닥에 떨어진 그 은박접시를 <티코가 그랜저가 덤프트럭이> 밟고 지나갑니다. 이 시는 이렇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을 발랄한 수사로 밀고 갑니다. 은박접시가 그러하듯 일회용품의 속됨, 그리고 가벼움을 <제기랄>과 <너무 좋아>로 반복시켜 경쾌한 운율감이 전해집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은박 접시>가 되어본 시인의 감성에 있겠지요. <바람보다 가벼운 이 자유의 무게> 제기랄 너무 좋아, 죽음조차 즐거운 소풍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71 캣츠아이 13 - 노혜경 2001.09.18 1298 224
1070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이원 [1] 2001.09.19 1434 201
1069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 송찬호 2001.09.20 1228 189
1068 품을 줄이게 - 김춘수 2001.09.21 1196 187
1067 헌 돈이 부푸는 이유 - 채향옥 [1] 2001.09.22 1318 189
1066 거리에서 - 박정대 2001.09.24 1557 196
1065 상처에 대하여 - 복효근 2001.09.25 1627 206
1064 정동진 - 이창호 2001.09.26 1511 224
1063 가을산 - 안도현 2001.09.27 2815 286
1062 장지 - 박판식 2001.10.09 1448 247
1061 聖 - 황학주 2001.10.18 1310 250
1060 어떤 그리움을 타고 너에게로 갈까 - 김경진 2001.10.19 2026 202
1059 나무기저귀 - 이정록 2001.10.23 1204 203
1058 반지 - 박상수 2001.10.26 1425 191
1057 태양과의 통화 - 이수명 [2] 2001.10.29 1304 206
1056 죽도록 사랑해서 - 김승희 2001.10.31 1703 212
1055 경계1 - 문정영 2001.11.02 1164 181
1054 12월의 숲 - 황지우 [3] 2001.11.07 1598 203
1053 미탄에서 영월사이 - 박세현 2001.11.08 1099 188
1052 손전등을 든 풍경 - 박경원 2001.11.14 1184 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