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 최금진

2001.12.03 15:07

윤성택 조회 수:1795 추천:207

제1회 창비신인상 시인상 당선작/ 최금진 / 창작과비평사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차는 계곡에서 한달 뒤에 발견되었다
             꽁무니에 썩은 알을 잔뜩 매달고 다니는
            가재들이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
             반쯤 웃고만 있었다
             접근할 수 없는 내막으로 닫혀진 트렁크의
             수상한 냄새 속으로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움푹 꺼진 여자의 눈알 속에 떨어진 담뱃재는
             너무도 흔해빠진 국산이었다
             함몰된 이마에서 붉게 솟구치다가 말라갔을
             여자의 기억들은 망치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흐물거리는 지갑 안에 접혀진 메모 한장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
             헤벌어진 해골의 웃음이
             둘러싼 사람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 무엇이었을까……메아리가
             축문처럼 주검 위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갔다



[감상]
교통사고로 버려진 차안의 풍경을 더듬으면서 삶에 대한, 그리고 추억에 대한 부분을 섬뜩하게 그려낸 시입니다.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 부분이 사고의 상황과 그리고 존재의 고독함을 유추하게끔 상상력으로 열려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시의 장점은 시적상황 설정에 있는 듯 하군요. 생각해보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발견되지 못한 시신이 썩어가며 서서히 추억으로부터, 삶으로부터 잊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51 오래전에 잊은 이의 눈썹 - 허수경 [2] 2011.03.15 1809 146
1050 선풍기 - 조정 [1] 2005.01.25 1807 178
1049 민들레 - 이윤학 2001.06.13 1803 285
1048 제기동 블루스·1 - 강연호 [2] 2001.04.10 1800 283
»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 최금진 2001.12.03 1795 207
1046 아직은 꽃 피울 때 - 하정임 2004.08.19 1792 197
1045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경주 [1] 2006.08.17 1791 196
1044 첫사랑 - 진은영 [2] 2001.09.11 1789 190
1043 겨울 모스크바 편지 - 김성대 [1] 2011.02.11 1787 128
1042 벽 - 유문호 [1] 2006.04.25 1786 219
1041 가방, 혹은 여자 - 마경덕 [2] 2005.12.10 1785 217
1040 안녕 - 박상순 [4] 2007.06.20 1784 139
1039 이 골목의 저 끝 - 정은기 2009.04.09 1781 123
1038 나무에게 묻다 - 천서봉 2001.06.11 1781 327
1037 어느 날 문득 - 김규린 2001.08.14 1779 232
1036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 문태준 [1] 2005.05.06 1777 221
1035 감나무가 있는 집 - 김창균 [2] 2005.09.28 1775 222
1034 사랑 - 김상미 2003.08.14 1772 161
1033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 여림 [1] 2003.11.24 1770 204
1032 흙의 건축 1 - 이향지 2015.05.11 1767 0